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베르트 슈만 (문단 편집) == 작품 == 슈만은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음악가로서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과 문학적 재능을 결합해 음악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바그너]]가 악극을 통해 모든 예술의 통합을 시도했다면 슈만은 문학적 관념 위에 음악을 두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상당히 감성적이고 음악으로 쓰인 시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의 안에서 음악적 재능과 문학적 재능은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내면은 그 스스로에 의해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라는 가공의 인물들로 명명되었다.[* 긍정적인 성격이 플로레스탄, 부정적인 성격이 오이제비우스이다. 또한 그의 내면의 세계에서 멘델스존은 메리티스, 클라라는 파니라는 캐릭터로 명명되어 있었다.] 학자들 중에는 슈만의 정신병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두개의 인격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이미 예고된 게 아니었나라고 보기도 한다. 스타일의 측면에서는 당대 음악가들과 다른 상당히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고 구사했다. 화성의 측면에서도 참신한 화성을 이끌어 냈고, 특히 개성있는 부분은 바로 리듬으로서 낭만주의 음악가들 중 슈만의 리듬에 대한 감각이 최고라고 일컬어도 될 만큼 그의 작품에서 리듬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부점음표나 당김음을 자주 사용하고 강력함이나 마치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리듬을 통해 표현했다. 그의 작품에선 아주 작은 동기가 작품에서 중심축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곡 전체가 중심축을 이루는 작은 동기와 관련되게 구성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때때로 이런 동기들은 숨겨져 있기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동기들은 지명이나 인명을 음표로 옮겨놓은 것이여서 일종의 암호같은 것이기도 했다. 앞에서도 나온 피아노 작품 "카니발"에서 약혼자의 고향을 음표속에 숨겨두는 등의 방식이 그런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가는 역시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이라고 볼수 있고, 음악의 시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자신이 발굴한 음악가였던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슈베르트]]의 영향이 느껴진다. 그리고 당시 재조명되고 있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바흐]]의 작품들을 연구해 그의 대위법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기도 했다.[* Op. 56, 58, 60이 일련의 대위법적 작품들이다. 특히 Op. 60 'B-A-C-H에 의한 6개의 푸가'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은 매우 높았고 능숙한 대위법이 구사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 초기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 피아노 작품들이다. 작품번호 1번 아베크 변주곡부터 23번까지가 모두 피아노 작품일 정도인데 이는 이루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피아노 작품으로 대신 풀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슈만의 피아노 작품들이 '''정말 어렵다'''는 평을 듣는데 이유인 즉슨, 마치 오케스트라가 울리는 것처럼 슈만의 대곡들은 상당히 스케일이 큰데다가, 그 표현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언뜻 보면 슈만 피아노 소나타 2번 같은 곡이나 그의 소곡은 '뭐야 ㅈ밥이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그의 곡들은 대충 쳐보면 리스트처럼 별로 화려하지도, 쇼팽만큼 별로 시적으로 들리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대로 안듣고 대충 연주한다면 '애매모호한 스타일의 곡'이라고 속단하기 매우 쉬운 곡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표현적인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아지는 곡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화려해질 수도, 시적으로 들릴 수도, 심오하게 들릴 수도 있다. 따라서 알게 모르게 테크닉이 좋은 피아니스트들만이 잘 살려 낼 수 있는 곡들이 대곡뿐만이 아니라 소품들까지 포함된다. 이유는 아티큘레이션(이음줄)이나 외성,내성이 너무 섬세하게 쓰였기 때문인데 경우에 따라선 뭣도 모르고 슈만으로 과제를 받은 작곡 전공생들이 몇개월 하고 피토하는 일이 상당히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전공생들이 가장 먼저 통곡의 벽을 느끼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훨씬 더 어려운 작곡가도 많지만 라흐마니노프나, 라벨 같은 경우는 지도교수에 따라서 의외로 대학시절에는 거의 접하지 않는 학생도 있지만, 슈만은 전공생이라면 필수로 한두곡쯤은 공부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아 망했어요]]~~] [*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에서 어떤 예고생이 슈만의 피아노곡의 특징을 문장에 비유한 바 있다.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곡이 "나는 학교에 갔습니다"라는 식이라면, 슈만의 피아노곡은 "나는 학교에 갔는데 학교에 가는길에 하늘을 보니까 하늘이 무척 푸르르고, 길가를 보니까 풀들이 싱그럽고~"이런 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노벨레테라고 불리는 표제가 있는 피아노 모음곡 장르를 창시하기도 했다.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은 "가곡의 해"로 불리는데 이때에 슈만의 대표적인 가곡들이 다수 작곡되었다. 슈만 자신이 문학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시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시와 음악의 결합을 추구한 것이 그의 가곡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가곡의 가사로 채용하고 있는 시들은 당시의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로 슈만은 그 시들 가운데서 신중하게 텍스트를 골라 곡을 붙였다. 하이네, 괴테, 뤼케르트, 아이헨도르프 등이 슈만의 가곡에 채용된 시를 쓴 시인들이다. 또한 그의 가곡은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가 단순히 반주를 하는 것을 넘어서서 솔로 연주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시인의 사랑"의 마지막 부분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1842년에 집중적으로 작곡된 실내악곡에서도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현악 4중주]]곡도 쓰긴 했지만 역시 그의 [[실내악]]곡에서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수 있는 것은 피아노 4중주와 피아노 5중주로, 특히 피아노 5중주에서는 현악4중주에 피아노가 결합되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편성을 선보여 마치 피아노가 협주곡처럼 쓰이고 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는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다른 편성을 사용하며, 피아노와 현악4중주를 합치는 편성은 슈만이 사실상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런 실내악에서의 피아노 활용은 브람스가 계승해서 더 발전시켜 나갔다.[* 이외에 포레, 드보르작, 프랑크, 쇼스타코비치 등 후배 작곡가들이 슈만의 편성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또한 슈만은 이 두 작품에서 바흐 연구로 다져진 대위법 실력을 유감없이 펼쳐보이고 있다. 하지만 관현악에 있어서는 슈만의 능력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어린 슈만은 베토벤의 교향곡 같은 명교향곡을 남기고 싶어했고 이런 야심은 1841년에 교향곡 1번과 4번이 완성되면서 구체화 되었다. 슈만의 교향곡 중 제일 특이한 것은 역시 4번으로, 4번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마치 곡 전체가 하나의 소나타 형식으로 쓰인 곡을 연상시킬 만큼 구조적으로 주제의 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교향곡 4번의 또다른 특징은 각각의 악기들의 솔로 연주가 거의 없고,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이를 "투티(Tutti)"라고 한다.] 부분이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는 개정후에 이뤄진 것이다. 이를 두고 당대의 음악가들은 별로 좋지 않은 개정이라고 깠다. "오케스트라가 마치 피아노 같다"라거나, "생기가 없이 뻥뻥 울리기만 하네"라는 식의 평이 당대의 평이었고 그래서 성에 안찬 음악가들은 아예 직접 슈만의 교향곡을 뜯어고치기도 했다. ~~개정마인~~[[구스타프 말러]]가 대표적인 슈만 교향곡의 개정을 시도[* 악기 편성은 그대로 두고 관현악법에 손질을 가했다. 하지만 슈만의 본래 의도를 무시하고 너무 말러적으로 작품을 개정했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많다.]한 사람으로서 오늘날에도 말러가 개정한 슈만의 교향곡의 연주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슈만이 무능해서 그런 관현악법을 구사했다기 보다는 의도적이었다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슈만의 원래 의도에 충실한다는 차원에서 지휘자가 재량껏 오케스트라 각 파트별로 음량을 조절하거나 하는 식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 또한 교향곡 3번 "라인"을 살펴보면 금관악기 파트가 다소 엉성한데, 슈만이 본래부터 오케스트라 개별 악기들의 활용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어쨌든 이런 슈만의 관현악법에 대해서는 파울 하인리히 메르첸이 연구하여 1975년에 발표했고, 현대음악의 대표적 작곡가로 꼽히는 [[루이지 노노]]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에 슈만의 관현악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슈만의 작품 세계 중 가장 주목이 부족한 영역은 역시 합창곡이다. 실제로 오늘날 애호가들에게 슈만은 피아노 작품과 가곡에서 뛰어났던 인물로 기억되지만, 생전에 슈만에게 가장 큰 성공을 안긴 작품은 Op.50 오라토리오 천국과 페리이다. 또한 오랜 기간을 들여 작곡한 WoO 3 괴테 파우스트의 장면은 그야말로 필생의 역작. 혼성/남성/여성 합창곡이나 뒤셀도르프 지휘자로 재직하던 시절 써낸 미사곡도 수준급이다. 돌아보면 오페라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장르에서 걸작을 남긴 진정으로 다재다능한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